2006년 10월 21일
나비 이야기1

원래 나비를 처음 데리고 올 때는 백수인 동생을 믿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내 믿음을 배반하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백수에서 벗어난 일은 축하할 일이긴 하지만 그 덕에 고양이가 혼자 집을 지키게 됐다. 사실 동생이나 나나 집에 붙어있는 성격이 못 돼서 시간만 되면 놀러 나가고, 한 번 나가면 다음날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는 게 부지기수다. 거기다 난 매일 야근까지 해야 되고. 사실 그런 점들이 부담스러워 동물을 키운다는데 부정적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나비가 우리 집 식구가 되고, 그나마 믿고 있던 동생도 회사에 다니고. 그래서 나비가 요즘 참 외로움 탄다.
우리 집에서 나비의 공간은 부엌과 거실, 동생방이다. 내 방은 출입금지다. 평일 자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아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나는 잘 때 방해받는 것을 정말 질색한다. 자는 거만 방해 안 하면 괜찮은데 고양이가 어디 그렇게 남을 배려 해주나. 우다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소리에 몇 번 잠을 깬 이후로는 그대로 출입금지다. 한 번 들어오기 시작하면 문 닫았을 때 열어달라고 문 긁으며 우는 게 아주 괴롭다. 요즘도 동생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방문을 긁으며 울고 있다. 덕분에 문이 너덜너덜하다. 원래 처음부터 나비가 자는 곳은 동생방으로 정해놓기도 했고.
예전에 어머니가 수술받으시느라 동생이 병원에 며칠 가 있던 적이 있다. 그 기간을 나비랑 나랑 둘만 있었는데 외로울 거 같기도 학 불쌍하기도 해서 방문을 열어놓고 생활했다. 덕분에 아끼던 목걸이와 귀걸이 몇 개를 버리게 됐다. 처음엔 귀걸이 하나가 비쥬가 떨어졌기에 이 게 왜 떨어졌지?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귀걸이가 여러 개. 아끼던 목걸이가 줄이 중간에 뚝 끊겨있는 걸 보고 범인을 짐작했다. 내가 물건 간수를 잘해서 그런 액세서리들을 뚜껑 있는 함에 잘 보관한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여태 바뀌지 않는 생활습관이 한 번에 바뀔 리도 없고. 결국, 나비는 다시 출입금지를 당했다.
동생이 있을 때면 내가 들어오던 말던 별로 쳐다 보지도 않는 나비가 요즘은 퇴근해 집에 들어갈 때면 현관까지 나오고 내내 따라다니며 냐옹 냐옹 운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엔 가끔 문을 열어주게 됐다. 그제도 문을 열어줬더니 방안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창 턱에 올라가고 침대 밑에 숨고 하기에 침대에 누워 책 읽다가 옆을 탕탕 치며 이리 와라고 불렀다. 소리가 나자 쳐다보기는 하는데 오지를 않는다. 한참을 나비야 이리 와, 이리 와라고 부르자 망설이다 슬금슬금 다가와 씰룩씰룩 엉덩이를 흔들더니 침대 위로 뛰어올라온다. 배에다 얹어 놓고 쓰다듬어주니까 한참 그르렁 거리다 내려갔다.
어제도 10시쯤 집에 들어가니 동생은 그 시간에 술 마시러 간다고 외출하고 나비 혼자 있었다. 씻고 잘 준비하고 읽던 책을 펼치며 침대에 누웠다. 문은 열어두고. 나비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기척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매트리스 울리는 소리가 들려 보니 옆에 올라와 있더라. 배를 두들기며 올라올래? 물어봤는데 올라올 생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이불을 들치고 들어올래? 물었는데 망설이더라. 그래서 무릎을 세워 앉아 이불 공간을 만들어 줬다. 그리고 다시 책 읽다 보니 어느새 다리 밑 공간에 들어와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러다 나가려니 생각하고 계속 책을 읽었는데 나가질 않는다. 자세가 불편하기에 반쯤 누우며 나비를 배 위로 끌어올렸다. 처음엔 버둥거리며 다시 내려갈 것 같더니 슬금슬금 자리를 잡는다. 좀 더 위로 올라와서 머리를 내 턱밑으로 들이밀고. 사실 내 배 위로 올라오면 나비가 너무 커서 자리가 편치 않다. 덕분에 나도 읽던 책을 내려놓고, 한 손으론 몸을 지탱해주고 다른 손으론 얼굴을 쓰다듬어 줬다. 나비가 그렁그렁하며 몸을 울린다. 기분 좋아하는 나비를 보니 나도 기분이 따뜻해져서 그 상태로 잠들었다. 한 손으론 쓰다듬다 말다 하고 다른 손으론 살짝 지탱해주면서. 자세가 불편해서 계속 잠들었다 깨곤 했다. 나비는 내내 온몸을 그렁그렁 울리고 있고. 잠들었다 싶으면 그 소리에 깨기도 하고. 보통은 그렇게 자도 30분 이상을 같이 못 자는데 어제는 웬일로 내려가질 않더라. 요즘 많이 외로웠나 불쌍하기도 하고, 그 기분 좋은 고양이 얼굴이 너무 좋아서 계속 그 자세로 쓰다듬어 줬다. 몇 번을 자다 깨다 보니 새벽 1시가 되어있더라. 어언 두 시간. 더 이상은 허리가 아파서 그 자세를 유지 못 하겠고. 아직도 그렁 거리머 몸을 울리는 고양이 표정이 너무 귀여웠지만 할 수 없이 이제 그만 내려가라 하고 밀었다. 근데 내려가질 않으려고 발톱으로 옷을 잡는다. 아프다니깐! 살짝 화를 냈더니 그제야 내려서 방 밖으로 나간다. 따라나가서 물 한 잔 하고 거실 불을 끄고 아직도 동생 들어오지 않은 거 확인하고 현관 불만 켜고 문을 닫고 다시 들어와 잠들었다.
새벽에 비몽사몽 간에 고양이가 냐옹 냐옹 우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집 나비인가 창 밖에서 들려오는 소린가 고민하며 반쯤 잠들어 있는데 우스스 사료 쏟는 소리가 들린다. 아 우리 나비구나, 동생도 들어왔네 생각하며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깨어 방문을 열었더니 동생은 또 나갔고(체력도 좋다.) 나비가 혼자 눈 동그랗게 뜨고 기다리고 있다.
# by | 2006/10/21 11:19 | - 그냥하는얘기 | 트랙백 | 덧글(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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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조그만 소리에도 잠을 잘 깨는 편이라 고양이가 냐옹거리거나 우다다 하면 잠을 못자서 잘 때는 못들어오게 했거든요. 아침쯤 되서 내가 안 일어나면, 빨리 나오라고 보고싶다고 문밖에서 울다가 나를 졸졸 쫓아다니곤 했어요. 내 옆에서 그르렁 거리면서 누워있기도 좋아했고.
저랑 룸메언니 둘다 바쁠 때는 어찌나 외로움을 타는지. 그나마 고양이 둘 키울 때는 괜찮았는데, 사정이 생겨서 나중에 한마리만 키웠거든요. 그 때는 참, 어찌나 짠하고 안쓰러웠는지 몰라요.
아, 나도 내가 키웠던 고양이 보고싶네요 ㅠ_ㅠ
여우비님 / 이번주엔 동생이 집을 비워요. 덕분에 나비랑 저랑 둘이 지내야하는데 불쌍하기도 하고 얼마나 밤에 안 자고 문 긁고 있을까 무섭기도 해서 문 열어줘야 할까봐요. 아 그렇지 않아도 피곤해 죽겠는데 밤에 잠자는 거 방해하면 아무리 이뻐 보이다가도 그 순간에 정말 짜증이-_-;;;;
유진 / 누군가 했다. 내 블로그엔 반말로 덧글 남기는 사람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