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한 십 년? 십일 년?
대학에서 만나서 1,2학년 같이 술 먹고 돌아다니고, 같이 동아리 활동하고 그 안에서 커플들이 생겼다 깨지고, 여러 번의 여행, 더 친한 사람, 덜 친한 사람도 있고, 남자들이 군대 입대하고, 휴가 나오고, 제대하고, 여자들이 한명 한명 취업하고, 첫 월급 턱을 내고, 장학금 턱을 내고 모두가 사회에 나와서도 일 년에 대충 8-10번은 만나 술 마시던 사이.

사회에 나오며 서로들 바빠지고 결혼한 사람들도 생기면서 무언가 만날 핑계가 확실히 주어지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결혼알림모임, 생일모임 등을 중요시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정보다 의무감이 짙어지고, 다른 사람이 나오는 게 의무감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그런 사이가 됐다.
슬슬 그런 의심이 위험수위까지 올랐는데, 그 이유는 솔직히 내가 애정과 의무감의 선에서 의무감이 아슬아슬하게 절반 수위에 다다르고 있어서고, 모임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번히 빠지는 멤버가 빠지면서 미안함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 이 정기 모임은 파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느 모임에나 나름 주기가 있듯, 이 모임도 이제 끝나가는 때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있는 애정과 미련이 쉬이 손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가을과 이번 주, 새로 연락을 맡은 친구에게서 "다음주 X요일" 하는 식의 통보 문자를 받았다. 선약이 있는 날. 못 간다고 대답을 했다.

그동안 가능하면 참석하려 노력했고, 그래서 정말로 빠진 적이 거의 없었던 모임이다. 그만큼의 시간과 애정들 들여왔지. 그렇게 쌓여있는 노력과 애정이 더 큰 기대를 만들어 낸다. 잘 모르는 사람,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그 사람은 그런 타입인가라고 생각하고 말 텐데, 그러지 못하고, 왜 다시 물어주지 않는 걸까? 왜 통보하기 전에 언제 되냐고 묻지도 않는 걸까? 못 간다고 하면 그럼 언제 되는데? 라고 한 번 더 묻는 게 그리 힘드나? "그날 안 되는데 왜 하필 그날"이라고 답 보냈더니 다시 연락이 없다.

어차피 여러 사람 모이는 것이니 주인공이 가능하고 가능한한 못 오는 사람 적은 날로 정하는 게 맞는데, 그건 아는데, 그럼 다른 날은 누가 안된다거나 안 되는 사람이 많아서 그날밖에 안 되겠다 정도 얘기 못해주나?

메신저를 하지 않으니 이런 마음을 전하기 더 어렵다. 전화를 하자니 너무 진지하게 화내는 거 같아지고, 문자로 하자니 하고 싶은 말이나 전하고 싶은 마음의 반의 반도 안 담긴다. 차라리 메신저로 장난식으로 통보냐? 라고 묻고, 대답 듣고, 그렇게 들리잖아 투정하고 그게 편할 텐데.

중간에 낀 다른 친구가 내 섭섭한 마음을 전했는데 그게 제대로 전달이 안됐나 보다.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지만 하고 있는 말을 듣자니 난 왜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고, 그 친구는 내게 왜 전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 같다. 처음엔 그래도 반갑게 전화받고 웃으며 대화했는데 마지막엔 화를 내며 말하는 도중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연락이나 통보 나한테는 보내지 않아도 돼라고 문자까지 보냈다.

만 십일 년, 강산도 변하는 시간, 예전같지 않은 건 당연하겠지. 주기가 다해서 이제 자연소멸될 시기가 된 거겠지. 머리가 쉽게 납득한다. 이제 머리로 납득한 것을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가끔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주위 사람을 이런 식으로 잘라내 버리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무서워지기도 한다. 내가 더 까다로워지는 것일까? 아님 주변 관계가 그런 식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아니면 있던 관계는 그렇게 정리되는데, 새로운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인 걸까?

by 191970 | 2007/01/18 11:43 | -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 트랙백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c191970.egloos.com/tb/149258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마르스 at 2007/01/18 13:20
저는 대학교 친구들과 자주 만나는데, 워낙 살갑게 굴지 않는 사이라서, 맨날 일방적으로 약속 잡아서 통보, 이런 식이에요. 그러다보니, 아예 서운함 같은 건 없죠. ^^
Commented by funnybunny at 2007/01/18 19:57
음. 굉장히.. 어딘지. 제가 생각해오던 문제를 생각나게 하는 글이예요. 전부 사회에 들어오지도 않은 나이에 학생, 직장인 이렇게 걸쳐져 있고 다른 날은 안되냐고 문자가 오는 건 아니지만 .. 어딘지 서걱서걱 모래씹는 기분이; 제가 사회 생활 할 때 힘들게 시간을 내도 학생인 쪽의 일부는 너무 그 정한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아서 - 이미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때랑은 다른데 - 그 등등 껄끄러워지는 이유는 다양했지만요.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관계는 변해가는 것 같아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있던 관계가 줄어든다고 새로운 관계가 비례해서 늘어간다는 거 아니라는 걸 알게되는게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은데 또 점점 새로운 만남에 별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는게 참 웃긴 것 같아요^^;
Commented by Ant at 2007/01/18 21:03
저는 초,중딩, 고딩을 비롯하여 대딩까지 정말 각각 다섯손가락 안에 꼽는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데.
일단 두루두루 다 만나 놀기엔 제가 지방으로 내려온 바 거의그런 모임까지 챙겨나갈 수 없으므로.
그러다 보니 저리 각그룹의 친구멤버들이 모두 소수정예로 남았는데, 적어도 그 남아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시공간적 상황을 이해해주는듯. 연락 없다고 삐지지도 않고, 못 만난다고 소원해지지도 않는 듯 해요.
물론..두루두루 친한 친구들하고는 제가 대전을 오게 되면서 대충 다 떨어졌습니다.;;;
Commented by sarah at 2007/01/18 23:29
만나서 즐겁지 않은 모임은 이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세상이 좁아지는 느낌에 불안해진 적이 있었는데,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Commented by 191970 at 2007/01/19 09:18
저도 이제 만나서 즐겁지 않은 모임은 가고 싶지 않아요. 의무적으로 가게 되는 인간관계는 거의 다 끊어버렸는데, 이 모임은 의무감이 지탱은 해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살아 있어서 이게 좀 괴롭죠.

그리고 전 새로운 관계가 힘들어요. 예전보다 따지는 것도 만큼 낯설음을 극복할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너무 힘들고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거 같아요.
Commented by Annika at 2007/01/19 18:26
거리감이 생기는 친구가 생기면 그것이 오히려 편할 때도 있고, 마음 무거울 때도 있고 한 것 같아요. 그나마 마음 무거워지셨다니, 정말 친구인 건 맞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나마 아구 속 시원해~ 하는 경우라면 정말 나랑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인 것일테니 말이죠.
대학친구라는 것이 학창시절의 친구이니 어린시절에 만난 제법 가깝고 편한 친구인 건 맞는데, 나름 성인시절에 시작된 관계라서 아무래도 마냥 편할 수는 없는 것 같더군요.
거참... 정말 친한 친구면 들이대로 화라도 내고 툴툴 털텐데... 참말 거시기 하시겠어요. 그래도... 이 나이에 친구 문제로 기분 상할 수도 있다니... 새롭잖아요? ^^;;;
Commented by 191970 at 2007/01/19 18:39
Annika님 / 저는 항상 친구를 비롯한 주변사람 문제로 많이 기분 상한답니다. 제가 좀 예민, 까칠해서요. 후훗 언제나 가장 어렵고, 가장 영향 많이 미치는 것이 인간관계에요. 그리고 속 시원해~ 하는 경우는 거기까지 가기 전에 진작에 다 잘라냈죠. 제가 또 그런 건 못 참아서.ㅋ 전 그리고 의외로 그전의 친구보다 대학 친구들과 더 친하고 잘 터놓고 사는 사이였어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