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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언제, 어딘가에
나를 위한 황금 시대가,
르네상스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시대가,
단 한 장의 티켓,
단 하나의 비자,
단 한장의 일기장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언제, 어디가 될지는 모른다.

누가 그런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어제 내렸던 비는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도시 속에?
나의 내부에?
우주 공간은 차갑고 조용하며, 지평선은 무한에 가깝다.


[감상] 뮤지컬 쓰릴미 - * - 공연즐기다

1.
뮤지컬 쓰릴미(Thrill me)

1924년 시카고 교외 숲 속에서 14살 어린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손발이 뒤로 묶여 잘려 있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있었다. 이 잔혹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법대 졸업생인 19살의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차드 롭. 192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이 범죄는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고, 두 명의 용의자는 당시 명성을 날리던 변호사 찰스 대로우의 변호로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뮤지컬 '쓰릴미'는 시카고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지만 우리나라에 올라온 공연에서는 네오폴드와 롭의 실제 사건과 그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배제한다. 무대에 올라가는 단 두 명의 배우 그들은 단지 '나'와 '그'로 칭해질 뿐이다.

무대는 가석방심의위원회에서 '나'의 고백으로 진행된다. 현재 54세인 '나'는 34년 전 벌어진 그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건과 다르게 극중 나이는 스무 살이고, 가석방 심리와 사건은 34년의 간격이다.)

고등학교 이후, 스무 살의 나이로 재회한 그들. 만나지 못한 사이 니체의 초인론에 빠진 '그'. '그'는 스릴을 느끼기 위해 자신의 뛰어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그 범죄에 '내'가 동조하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그'.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벌이는 범죄가 장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 '내'가 흔쾌히 따라나서지 않자 '그'는 결국 계약서를 제안한다. 그들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함께하고 만족시켜주기로 피로 사인하는 계약을 맺게 된다.

'그'가 범죄를 저질러 스릴을 원하는 것처럼 '나'도 원하는 게 있으니, 계약서에 '내'가 주장한 것은 '그'가 거부하지 않고 나서는 육체적 관계였다.

그가 원하는 범죄가 결국 살인에까지 오고, '나'는 거부하지만 결국은 함께 나설 수밖에 없다. 그들은 힘없고, 똑똑하지 않은 어린아이를 유괴하기로 한다. 아이를 유혹해 차에 태우고, 살인을 저지른 후 완전범죄를 위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염산을 부은 다음, 멀리 시체를 유기한다. 그리고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부모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지만 결국 시체가 발견되고 시체를 버릴 때 떨어뜨리고 온 '나'의 안경이 단서가 돼 경찰은 점점 그들에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를 버리려고 하고, 그 배신감에 '나'는 경찰에게 '그'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고백한다.

공연 내내 중심으로 보이는 것은 실제로 벌어진 그 잔인한 사건도 아니고,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느냐, 아님 유죄임이 밝혀지느냐 하는 법정공방도 아니다. 단지 사건 전부터 기반이 된 그들의 관계,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사건이 그들의 관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단지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그들의 관계가 전부다.

'그'는 나'를 조종하고 괴롭히며 그럼에도 자신에게 애정을 갖고 떠나지 못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하지만, 사실 '나'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였다. '내'가 떠나지 못하도록 적당히 원하는 것을 던져주며 자신 곁에서 맴돌도록.

내내 연약하게 따라다니고, 휘둘리는 모습만 보이는 '나'는 사실 그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만만하고 거만하지만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는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한다면, '나'는 그보다는 훨씬 독자적인 어른이다. '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 한 번도 혼동하지 않았다.

그 둘은 부유했고, 천재라 불릴 정도로 영리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다른 사람과 통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를 속박하기를 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영리한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 그런 생각이 니체의 초인론과 연결이 되어 범죄에 대한 어떤 죄책감도 갖지 않게 했다.

무대에서 '그'는 내내 자신만만하고 건방진 모습으로 사악하고, 유혹적인 미소를 짓는다. 그 강렬한 유혹에 '나'와 유괴되는 소년뿐 아니라 관객까지 모두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무대 위의 세 번째 주인공. 90분여 공연시간 동안 거의 멈추지 않고 반주와 배경음을 담당하는 피아노는 이 공연에 또 다른 커다란 장점이다. 마치 피아노 연주회를 다녀온 것처럼 내내 귀에 맴도는 피아노 소리가 공연을 보고 난 뒤 여운으로 함께 남는다.

2.
인상적인 장면.

살인 사건을 저지르자고 처음 이야기하는 장면. '내 동생을 죽인다면'
'그'가 소년을 유혹해 차에 태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 'Roadster'
살인사건이 저지른 후, 사건 경과를 신문과 방송으로 알려주고 '그'와 '내'가 통화하는 장면들. 그 리드미컬한 연결.
'그'가 재판 결과 나오기 전 마지막 밤에 두려워하는 장면.
마지막 가석방이 선언되고, 내가 35년 전 가지고 있던 물건을 돌려받는다 할 때, '내'가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떠올린 순간 뒤에서 슈트를 잘 차려입고 나온 '그', '그'의 뒷모습과 옆얼굴.

3.
2007/04/19 A팀 류정한의 '나'와 김무열의 '그'

사실 두번째로 본 B팀 공연첫 관람한 A팀 공연 보다 더 많이 와 닿았다. 최재웅씨의 안정적인 연기와 함께 자리가 C블록이어서 코 앞처럼 가까운 곳에서 본 이율씨의 광기어린 그 형무소 독방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3주만에 찾은 A팀 공연은 또 다르다. 두 배우의 주고 받는 호흡이 안정적으로 보이게 됐고, 그 둘의 끈적한 감정도 훨씬 표현이 잘 된다. 초반에는 둘의 스킨십이 들어간 장면들이 감정이 묻어나지 않고, 영 어색하게 보인다란 느낌이어서 아주 아쉬웠는데 그 장면들도 훨씬 끈적하다. 노래의 하모니도 그렇고. 류정한씨의 '나' 캐릭터도 훨씬 감정적이 된 게 마음에 들고, 김무열씨가 예전엔 잘 안 보이던 사악하고 유혹적인 모습도 아주 좋다. 덕분에 Roadster가 아주 살아난다. 그리고 그 독방 씬. 김무열씨의 '그'가 보여주는 두려움은 이율씨와는 다른 감정, 다른 표현이지만 굉장히 좋다. 전체적으로 '나'의 감정보단 '그'의 감정이 따라가기 쉬워서인지 류정한씨 목소리와 노래는 귀로 듣고 눈은 계속 '그'를 따라다녔다.


2007/03/24 뮤지컬 쓰릴미 + 최재웅, 이율
2007/03/23 뮤지컬 쓰릴미 + 류정한, 김무열

핑백

  • #191970 - Midnightblue : [감상] 쓰릴 미 + 최재웅, 이율 2007-07-05 11:02:40 #

    ... 1열 잡아놓은 걸 가야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가야겠다. 어쩌면 그 사이에 한번쯤 더 갈지도 모르겠고. 사실 김무열씨 슈트도 한 번 더 보고 싶다. 2007/04/19 뮤지컬 쓰릴미 + 류정한, 김무열 2007/03/23 뮤지컬 쓰릴미 + 류정한, 김무열 ... more

  • #191970 - Midnightblue : [감상] 쓰릴 미 + 류정한, 김무열 2007-07-05 11:03:18 #

    ... 데, 노래를 잘 하는 배우는 팬심을 유지하기 힘들구나. 멋지게 보일 땐 진짜 끝내주지만 돋보이지 않을 땐 아쉬운 점들이 이렇게 눈에 들어와버리니. 2007/04/19 뮤지컬 쓰릴미 + 류정한, 김무열 2007/03/24 뮤지컬 쓰릴미 + 최재웅, 이율 ... more

덧글

  • 마르스 2007/04/20 17:46 # 답글

    최재웅, 이율커플도 보긴 봐야할텐데요.
  • 191970 2007/04/20 17:52 # 답글

    마르스님 / 연장 공연에서는 크로스 스케줄도 나왔어요=_= 최재웅+김무열 조합도 궁금해요.
  • 마르스 2007/04/21 22:19 # 답글

    글쎄말입니다! 한편으로는 궁금해서 보고 싶기도 하지만, 뭐 여러번 질러야 하는 부담까지 더해졌어요.
  • maemuki 2007/04/21 23:05 # 답글

    쓰릴 미 공연도 티켓전쟁이 심하다면서요? 좋은 공연은 보고싶지만, 치열한 예매전쟁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고 그렇습니다. ^^
  • 191970 2007/04/23 09:30 # 답글

    마르스님/ 사실 쓰릴미는 이번까지만 보고 끝내려고 했는데, 극장 바뀐다니 그것도 궁금하고 캐스팅 조합 바뀌는 것도 궁금하고.-_- 마지막이라니 류정한+김무열도 한 번 더 보고 싶어지고. 아주 큰 일이에요.

    maemuki님 / 그 정도로 심하진 않아요. 당연히 앞열 중앙으로 하시려면 바쁘게 움직이셔야 하지만 그 외 좌석은 그정도 아니고. 당일 50% 핫세일 티켓도 나오는걸요. 전 2열 잡은 것도 시간 날 때 날짜 한바퀴 돌았더니 누군가 취소한 좌석인지 좋은 좌석있어서 예매한 거였어요. 사실 예매 '전쟁'이라고까지는. 공연이 아주 인기 좋아도. 조승우씨 공연정도 아닌 바에야 공연 초기와 막공 빼고는 그렇게 치열하지도 않고, 그래서 안봐 라고 결정하시는 것도 좀 섣부르신 게 아닐까 하는데요.
  • maemuki 2007/04/23 22:23 # 답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뮤지컬동호회에 올라오는 후기들에는 티켓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밖에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었지요. 연장공연이면 인기가 많은 작품일텐데 공연당일 현장에서 구매하는 방법도 가능할까요? 일정에 변동이 많아서 선뜻 티켓을 예매하기는 부담스럽구요.
  • 191970 2007/04/24 09:25 # 답글

    maemuki님 / 공연동호회 분들이야 워낙 앞자리, 좋은 자리 탐내는 분들이 많아서 그렇겠지요. 언제쯤 보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공연하고 있는 충무아트홀 소극장의 경우 S석은 꽤 남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3면 좌석 극장이라서 S석은 정면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볼만한 극장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연장 공연 가는 예술마당은 뒷좌석이라도 정면 좌석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당일 표는 제가 뭐라 말하기가 그러네요. ^^;; 아마 있을 거라 생각되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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