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뮤지컬 바람의 나라 + 김산호 괴유

 
뮤지컬 바람의 나라
2007/05/10 20:00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고영빈 / 김산호 / 홍경수 / 김호영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만화 바람의 나라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그 만화는 고구려 3대 왕인 대무신왕 무휼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몇십 년에 걸친 현재 22권까지 나와있는 역사 대작이다. 뮤지컬에서는 그 모든 내용을 무대 위로 올릴 수 없어 1-6권의 내용 중 11장면을 공간과 시간에 상관없이 뽑아내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냈다.

어린 나이에 부여로부터 보내져 온 차비 연. 그녀와 사이의 아들 호동. 연은 무휼이 태자였던 시절 전쟁을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호동을 낳고 고구려의 후손을 죽이기 위해 보내진 부여의 자객 손에 아들을 지키다 죽었다.

무휼이 태자가 되기 전 그의 형이었던 태자 해명이 있다. 그는 그의 재능을 시샘한 무리 덕에, 아버지 유리왕에게 의심받아 반역죄로 죽으라는 명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명을 따르던 무리는 무녀 혜압과 함께 숨어 지내고, 무휼이 누나 세류를 찾아(이 장면은 뮤지컬엔 없다.) 명림 숲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혜압과 해명을 따르던 무리, 그 무리의 대장인 마로를 만나 해명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리라 약속하고 그들은 무휼을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괴유. 어린 시절 동부여 군대에 의해 일가족이 모두 몰살당한 후 자신의 여동생이 사실 자신을 사랑해 땅에 내려온 천제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일가족과 함께 죽었던 가희는 불사불노의 꽃으로 다시 태어나 괴유에게 자신과 함께 영원히 살아갈 것을 청한다. 그러나 괴유는 왕될 별을 따를 것을 유한의 삶을 살 것을 선택한다.

(괴유) 하늘의 꽃인 네가 알까 내 삶의 이유. 통곡하지만 놓지 못하는 그것.
내 심장의 저 깊은 곳 피어오르는 피냄새

(가희) 가지 말아요. 눈감고 듣지 말아요. 함께 숨어 저 세월이 가는 걸 봐요.
그러면 삶의 그 모든 것이 하찮아질 테니
난 당신 위해 해마다 다시 피는 목숨.
나와 같이 머무르면 영원한 젊음과 생명, 나를 얻으면 생사를 초월하리

내가 사랑하는 희고 아름다운 사람 여기 머물러줘요.
시간이 멈춘 적막한 이 계곡 당신과 나의 보금자리에

하나님 이이는 하늘꽃 가희가 마음과 몸 받쳐 사랑하는 이
천년의 또 천년 죽지 않는 천녀가 슬프게 사랑한 사람
그리 죽게 마셔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이 없는 세상 나 홀로 천년을 어이 더 살아

죽으러 가는 자리 죽고 마는 자리
죽음을 택한다면 나도 함께 데려가 줘요.

(괴유) 내겐 두 개의 운명이 있어, 죽음의 길과 영생의 길.
너를 따라가면 영생의 삶, 그를 따라가면 죽음이 기다린다는 것.
어느 것을 버리면 후회할까, 버리고 살면 천년 얼마나 후회할까.

(가희) 당신이 간 천년이 얼마나 외로울까, 죽지 않는 내 시간이 얼마나 힘이 들까

(괴유) 인간의 몸을 가졌으나 여전히 하늘에 속한 천녀야
사람 아닌 네가 어찌 알까 인간의 희망, 의리와 신념을.
살아서 힘든 나를 봐라.

(가희)살아있는 당신과 같이한다면
(괴유)죽어서 사는 천년 얼마나 두려울까
(가희)죽지 않고 사는 천년 얼마나 두려울까



고구려 태자 해명이 제 아비에 손에 죽어 한숨 돌렸더니
주몽의 땅에 주몽을 닮은 놈이 한 놈 더 나왔구나.
앞날이 피곤하다 저놈도 죽여라.

마마 저 연빈은 한의 치졸한 계략에 빠져 그만 목을 잃고 말았습니다.
제가 목을 잃었기에 기고만장한 놈들이 멋대로 우리 왕을 멸시하여 더러운 호칭으로 부르니
제가 통탄하여 무덤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용서하소서. 무휼 왕자님. 당신의 사부가 그렇게 비참하게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제 누가 저 오만한 한나라를 응징하여 우리 고구려가 당한 수치를 지워 없애 줄 것입니까?
피 흘리는 저의 몸통 위로 머리를 돌려주고 흘려도 흘려도 멈추지 않는 저의 눈물을 멈추게 해줄 것입니까! 마마! 대체 누가!

내가 네 머리를 돌려주지.
기다려라 저 난하를 건너 한을 치고 네 머리를 찾고 그 땅에 고구려의 깃발을 꽂을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아. 어떤 방법을 다 써도 좋아
평생을 걸고라도 싸울 거야
더는 약하기 때문에 잃고 살지 않겠다.
내 땅에 사는 내 사람들.
난 그들이 우는 건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무휼은 자신의 나라를 우습게 여기고 핍박하는 부여와 한나라를 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전왕의 구신들에게 군대를 빌리려 하고, 구신들은 대신 그들이 내세우는 여자, 이지와 결혼할 것을 요구한다. 무휼은 이지와 정략결혼을 하고, 구신들을 모두 숙청한다. 이지는 야망이 있는 여자였고, 그 야망을 위해 궁에 들어왔지만 그 야망 외에도 무휼, 한 남자의 여인으로 사랑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무휼은 그런 이지를 거부하고. 이지는 결국 무휼을 원망하게 된다.

이 뮤지컬을 보고 느낀 감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내가 얼마나 바람의 나라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에 읽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만화 바람의 나라. 바람의 나라의 얼마나 많은 대사와 장면들, 인물이 내게 그런 감동을 주었는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다가도 사소한 연결고리 하나로 그 당시 느끼던 감정이 연달아 솟구쳐 오른다. 특히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들로 가득했던 것이 인상 깊었고, 그런 대사들로 인해 받은 감동들이 아직도 가슴에 절절히 남아있다. 솔직히 그런 문어체 대사를 실재 인물이 발음한다는 거 가능할 거라 생각지 못해왔는데, 어색하지 않고 사람의 입으로 그 인물이 되어 내뱉는 대사들을 듣고 있자니 그것만으로도 만족도가 이렇게 높아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다. 뒤에 비치는 스크린 속에 해명태자의 죽는 장면이 나올 때면 머릿속에선 말을 달려 땅에 꽂은 창을 향해 몸을 날리는 해명태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체적으로 1막은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몇 장면에서는 배경 영상이 굉장히 좋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론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장면 장면이 완전히 끊어지지도 자연스레 연결되지도 않는다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타니와 해명태자의 마지막 밤은 정말 좋았다. 사실 작년의 유나영씨의 연은 너무 강한 게 아니냐라는 소리도 많았는데, 죽는 장면에서의 유나영 연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다. 호동을 지키려고 목숨마저 버리는 어머니. 부여에서 왔지만 이제 나는 고구려 태자 무휼의 아내고, 고구려의 왕이 될 자의 어머니다. 라고 외치던 연. 그의 절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무대에선 그런 느낌이 좀 약해서 아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아래)세류의 대사도 없어져서 좀 섭섭하고.
내 어린 동생 무휼이 칼을 안고 전쟁을 하러 간다.
밖이 보이지도 않는 커다란 투구를 쓰고
무휼아, 그 예쁜 뺨에 눈물 흘리는 것 보고 싶지 않아
그 작고 하얀 몸에 피 흐르게 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이렇게 어린 너를 전쟁터에 보내 우리가 무엇을 얻을까.
이렇게 작은 너를 전쟁터에 보내 우리가 무엇을 구걸할까.

내가 너 대신 싸워줄까. 내가 너 대신 피 흐르는 그 칼을 잡아줄까
운명을 짊어진 너의 그 작은 어깨가 안쓰러워 이 누나의 심장이 찢긴다.
내 작은 동생 무휼아 너를 지키도록 네 곁에 나를 두어라.
나 세류가 평생을 두고 너의 곁을 지킬 것이다.


이지와 무휼의 첫날밤 장면 연출은 아주 좋았다. 단지 이지 역의 도정주씨 노래가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장면 하나하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도 전체적으로는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2막이 시작하자, 몰입도가 달라졌다. 전쟁 씬은 노래 한 곡 나오지 않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엾은 호동의 심정 또한 가슴이 울렸다. 사실 조정석 호동이 정말 보고 싶었고, 보지 못하게 된 건 김법래 해명을 보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가장 큰 아쉬운 점이었다. 김호영씨도 괜찮은 배우라는 건 알고 있지만 연상되는 이미지가 호동이 연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서 연기하는 그를 보자 예상과는 아주 달랐다. 사랑스런 아이 호동과 점점 소년이 되는 그. 김호영씨 정말 좋은 배우다.

무휼은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를 보며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너무나 사랑했던 여인의 아이, 너무나 사랑해서 이름을 '호동'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혼자만의 삶이 아닌 나라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왕인 그는 가슴은 점점 차갑게 식어가고, 나중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다.

호동은 현실적인 무휼에 비해 이상국가를 꿈꿨다. 아무도 피 흘리지 않는 나라. 그러나 이상국가 - 그의 하늘 위 부도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 없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기 힘들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들 호동은 자신과 다르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따르기를 원한다. 얼른 자라 그의 뒤를 따라 전쟁터로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호동의 신수가 무휼의 신수 청룡과 상극이었듯 정해진 길을 거스르지 못했다.

"사람들이 정해진 길로 가네. 그래도 꾸어야 하는 꿈. 그래야, 인생이 허무하지 않지."




(해명)
어떤 꿈은 이룰 수 없어도 꾸어야 하는 꿈
보아라 이 땅의 눈물을
들어라 바람의 소리를
이 땅을 지키려했던 영혼들
그 피눈물을 닦아라

(무휼)약한 자는 왕위에 올릴 수 없다
(해명)그의 땅과 너의 하늘이 만나는 곳에 부도가 있을 것이다.
(무휼)네가 네 스스로 신수를 버렸을 때
이미 그렇게 결정된 거다

(헤압)
아들에게 활을 쏘는 아버지여
아버지를 돌아서는 아들이여

(해명)
가리라 원한을 풀으러
가거라 이 칼을 들고서
세상이 내 손에 피를 묻혔으니
나 피의 원한 비로소 풀리라

(호동)
눈물 없이도 이별 없이도
사랑하는 세상은 정녕 없는 걸까
나의 부도는 하늘 나무 위
피 흘리지 않아도 평화로운 세상
그런 세상 원하는데

(헤압)
아버지는 험한 산과 같아
아들은 그 산과 싸워야 하지
세상엔 더 높고 험한 산이 있어

(해명)
너무 일찍 피어난 꽃은 시절에 맞지 않아 빠르게 죽고
너무 이른 꿈은 희생을 부르지
너는 지금 너의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저 부도로

(무휼)
세상에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의 세계를 넘어 더 커지는 것
세상의 모든 왕들은
앞선 왕의 세계를 넘어 더 커지는 것

(해명)
따르라 태자의 운명을
(호동)그런걸 원했을까
가거라 저 피 묻은 길로
(호동)내 신수를 버리고 그런 걸 원했을까
주어진 너의 운명 저버리면
(호동)피냄새 나는 아버지의 부도를 내가 정말 따라가길 원했을까
네 목숨마저 위험해지리니

(호동)
무얼 원하나 나의 아버지
당신 품은 사랑이 바로 이런 건가
나는 꿈꿨지 하늘 부도를
당신 손을 잡고서 함께 가길
나는 누군가 무얼 꿈꿨나
왕의 자리였던가 하늘 부도인가
나는 가리라 나의 뜻으로
당신 손을 놓고서 푸른 하늘 길로
푸른 하늘 저 부도로
푸른 하늘 저 부도로



마지막으로 전쟁이 끝났을 때 검을 들어올릴 힘도 없는 듯, 축 처진 그의 어깨를 하고 걸어가는 보이지 않게 가슴으로 우는 왕의 등을 보며, 정말 진심으로 말하고 싶었다.

나의 왕이여, 어깨를 펴세요.

뮤지컬 바람의 나라, 만화 바람의 나라 모두 결국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이며, 위대한 왕이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by 191970 | 2007/05/14 18:19 | - 공연즐기다 | 트랙백(1) | 핑백(3)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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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람의 나라-무휼] 2007년 5월 12일 1회/2회
원작·1차 각색: 김진연출·2차 각색: 이지나작·편곡: 이시우작사: 정 영음악감독: 구소영안무: 안애순주연: 무휼-고영빈해명-홍경수혜압-고미경호동-김호영이지-도정주연-여정옥괴유-김산호세류-신영숙가희-이채경마로-김백현배극-배성일병아리-심정완새타니(젊은 시절의 혜압)-김은혜대소-박원묵대소(젊은시절)-최정수연비-박석용5월 12일 15:00(1층 B열 101)/19:00(1층 B열 100)의 후기입니다.2006년도에 뮤지컬 [바람의 나라-무휼]을 관람......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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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르스 at 2007/05/14 21:17
저 이 공연 볼 때, 조정석씨 와서 보더라구요.
Commented by 여우비 at 2007/05/14 22:03
아아, 부러워요. 저 정말 이거 보고 싶어요...시간이 안 맞아서 작년에도 어쩌다가 놓쳤는데, 올해도..ㅠ_ㅠ; 작년에 비해서 안 좋은 말들이 이리저리 나오고 있는 모양이던데. 저는 그 어느 버전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있는 걸까 생각하니 속상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고영빈씨 공연을 계속 놓치고 있다는 것도요. 덕분에 조금이나마 공연 상상해 봅니다. 고마워요 :)
Commented by misha at 2007/05/15 11:27
관련 리뷰를 검색하다 방문했습니다(빨간그림자 님 댁에서 자주 닉으로나마 뵙긴 했습니다만^^;).
전 12일 공연을 보았더랬는데, 작년 공연과 비교하여 무척 아쉬움을 느꼈더랬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산호 괴유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줘서 좀 위안이 되긴 했습니다. 많이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왔는데도 또 보고 싶은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네요.
Commented by 체셔 at 2007/05/15 22:39
전 작년에 보면서 만화랑 막 오버랩시켰더랬죠.원작과는 떼놓고 보게 되지를 않더라구요.
Commented by 191970 at 2007/05/16 12:46
마르스님 / 그러고보면 공연장에서 다른 배우분 본 분들 얘기 참 많은데-_- 저는 왜 못보는 걸까요. 심지어 있었다는 말도 나중에 같은 공연 본 사람한테 듣질 않나.

여우비님 / 아쉬운 공연이에요. 단점도 분명 있지만 여러모로 특출난 개성 많은 공연인데 말이에요. 고영빈씨는 완전 멋지고.ㅋ

misha님 / 작년 공연 좋아하셨던 분들 중에는 그런 아쉬움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신가봐요.

체셔님 / 네. 저도 뮤지컬 자체 만으로는 평하기 쉽지 않네요. 얼마만큼 그 만화를 좋아했었나가 또 중요한 감상 포인트를 제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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