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출근

 
석가탄신일도 정상근무라는 공지가 떴다. 아, 출근하기 싫다. 전날 야근하고 밤에 퇴근하며 거울을 보니 점점 짙어지고 넓어지는 다크 서클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근무라고는 하지만 휴일 출근이니 정시에 출근하기는 싫다. 속도 모르고 6시 반 알람이 울린다. 자다 깨다 하며 좀 더 버티다 결국 8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씻고 머리 세팅하며 준비하지만, 정말 출근하기 싫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 계절이 몇 번 바뀌도록 제대로 옷정리를 한 적이 없어서 옷장이며, 행거, 서랍 모두 난리가 났다. 개발에 피치를 가하며 끝을 준비하며 토요일을 출근한 지 10개월이 되어가며 피곤에 절어 산 기간도 그 정도 되어가니 이제는 청소 한 번, 설거지 한 번도 큰 맘 먹어야 가능한데 옷장 정리를 할 여유가 어디 있겠어. 머릿속엔 이런 옷, 저런 옷이 있는데 막상 찾으려고 들면 어디부터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여름이 다가오기 전 정말로 정리를 해야 할 텐데. 하지만, 6월이면 끝날지도 몰라. 그럴 거면 그냥 6월까지 버티고 다 뒤엎어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마침내 지난달에 사고 아직 외출을 한 번도 못한 치마를 찾아낸다. 출근할 때 입기엔 적당해 보이지 않아 여태 입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은 뭐 휴일이잖아. 그 위에 입을만한 올해는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상의도 찾고. 스타킹을 신으려니 답답한 기분이 들어 그냥 맨다리로 가리라 마음먹고. 이번엔 신발장을 뒤진다. 아직 올해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샌들을 찾는다. 겨울 신발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부츠가 신발장 여기저기 구겨져 있다. 가슴이 아프다.

색 맞는 샌들을 신어보다 보니 올해 처음 등장하는 맨발이 왠지 좀 불쌍하다. 피부화장만 한 상태로 머리에는 세팅을 만 채로 담배를 하나 빼어 불을 붙이고 침대에 걸터앉아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기 시작한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올 거라더니 생각보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밝다.

매니큐어를 바르고, 피우던 담배를 눌러 끄고, 점점 게을러져 요즘엔 바르지 않는 마스카라까지 바르며 화장을 정리하고, 머리 세팅도 풀고, 정말로 나갈 준비를 한다. 가방까지 새로 꺼내고 이런저런 물건을 꺼내느라 난장판이 되어버린 방을 한 번 돌아보고, 한숨을 한 번 쉬고, 나온다.

휴일이라 전날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온 동생은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나비마저 동생 방에서 같이 자느라 나오지 않는다. 쳇. 치사해라? 나비가 자는 의자 위를 쳐다보자니 그제야 고개를 한 번 들어 쳐다본다. 얄밉지만 그래도 이렇게 예쁜데 어쩌겠어. 출근하는 사람들이 항상 잔뜩 서 있는 버스 정거장과 전철역은 한산하고 그나마도 어디 외출하는 옷차림들이다. 조금 서글프다. 그래도 올해 처음 꺼낸 옷과 올해 처음으로 등장한 맨다리의 샌들 등이 그나마 기분을 돋궈 준다. 안타깝게도 사무실에 앉아 잠시 웹서핑하는 사이 모기가 찾아와 무릎을 물고 갔지만.

창밖으로 비가 온다. 잠깐 오다 말다 하더니 본격적으로 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공기가 축축하다. 해야 할 일은 쌓여있지만 진행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해야지. 오늘 이걸 처리하지 않으면 끝내기로 한 시간까지 끝내지 못할 테니, 내일 저녁엔 뮤지컬 바람의 나라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가야하는데. 그리고 사실 오늘 저녁엔 캡틴 잭 스패로우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비록 휴일에 평상시처럼 출근해 저녁까지 일해야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오늘 야근은 하지 않아도 되잖아? 힘내자! 아, 무슨 노래를 들으면 힘을 내서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by 191970 | 2007/05/24 14:21 | - 그냥하는얘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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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녘 at 2007/05/24 19:38
오랜만에 듣는 191970님 소식은 어쩐지 예전이랑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네요. 이곳 호주에도 오늘 캡틴 잭이 돌아왔답니다. 다음 주에는 보러가야겠어요.
Commented by Annika at 2007/05/24 22:10
앗! 이걸 보자하니 발톱에 바를 메니큐어 사온 다는 것이 까먹었네요. 저는 번쩍이 다크블루를 발라보고 싶었거든요.
그나저나, 비 땜에 대략 저녁에 많이 추우시겠어요. 감기 걸리지 마시구요.
Commented by 시노조스 at 2007/05/25 02:13
잭 보고 싶어요 . ㅠㅠ
혼자라도 갈까봐요.
Commented by 191970 at 2007/05/25 09:30
이녘님이 오랜만에 오셨군요. 제 일상은 아직도 그대로입니다-_- 최소한 이번 여름까지는.

Annika님 / 저도 다크블루 좋아요. 무광택 네이비도 좋고. 어제는 초록색 발랐어요. 그리고 어제. 비는 많이 왔지만 날씨는 안 추워지더라고요. ^^

시노조스님 / 혼자라도 다녀오세요. 하지만 주말이나 저녁시간은 너무 커플대잔치인 거 같던데...
Commented by 뇌를씻어내자 at 2007/05/25 14:08
앗, 저 아침에 나오면서 매니큐어 챙겨 왔는데 잊고 있었어요. 눈치 봐가며 발라야지. 마감도 끝났으니 하루쯤 농땡이 부려도, 뭐.. -_-
Commented by 191970 at 2007/05/25 14:42
뇌를씻어내자님 / 오늘 보니 제 손톱도 다듬고 매니큐어 발라줘야 할 거 같아요.ㅠ 아 네일숖 가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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