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01일
[감상] 연극 레이디 맥베스

2008년 3월 21일(금)~4월 13일(일)
화,목,금 19:30 / 토 17:00 / 수,일 15:00
출연 : 레이디 맥베스(서주희), 전의 및 맥베스(정동환), 시종(권겸민, 홍승균),
물체극 창작 : 이영란
음악 : 박재천
작곡 및 구음 : 김민정
연출 : 한태숙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2008/03/30 15:00
한태숙 연출의 이름을 처음 안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재작년쯤 공연 열심히 보러 다니기 시작하고, 관련 글 많이 읽을 무렵일 거에요. 공연 관련글이 좋아 즐겨찾기 해 놓은 블로그였기 때문에 다른 추천들도 유심히 기억해두고 있어서 그 이름도 기억에 남았죠.
그리고 "강철"이라는 연극이 올라왔어요. 작년 1월이었을 거에요. 아룽구지 소극장이었는데 거기 의자 정말 불편하잖아요. 두 시간이 채 안 되는데 엉덩이가 너무 아파 앉아 있기 힘들었죠. 그런데도 두 시간 몰입이 깨어지진 않았어요. 너무 정신 없이 보고 나와서 배가 마구 고파질 정도. 나와서 맥주와 안주 잔뜩 시켜놓고 정신 없이 먹으며 떠들었는데. 감상문은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뭐라 써야 할 지.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보고 듣고 느낀 건 많은 데 그걸 글로 풀어낼 재주가 없네요.
그 때 그 무대가 너무 좋아서 그전에 다른 무대를 놓친 게 너무 아까워졌지요. 그리고 한태숙 연출 이름과 자주 함께 거론되는 고유명사가 바로 "레이디 맥베스"잖아요. 그래서 다른 것보다도 더욱 그 무대가 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작년 중반 토월극장에 예술의전당 전통연극시리즈 중 "시련"을 보러 갔을 때였을 거에요. 그 설문조사가 있던 거. 다시 보고 싶은 연극. 제 동행의 설문지까지 뺏어서 레이디 맥베스에 표시 했지요. 그리고 드디어 다시 올라왔어요. 이력을 보니 2002년 이후 6년 만이에요. 초연한 지는 10년 만이고요.
신나서 예매를 하는데 좌석 배치도가 이상하네요. 분명 토월극장인데? 좌석이 왜 이거밖에 안돼? 그런데 듣자 하니 객석을 모두 막고 관객을 모두 무대 위로 올린다네요? 정말? 더욱 궁금하고 기대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예매해두었던 그날. 비록 3일째 공연 보는 중이고, 전날, 전전날 새벽까지 술 마셔서 몸은 정말 힘들지만 기대에 가득 차서 토월극장을 찾았습니다.
그 전날 문자도 왔어요. 중간입장 불가하니 꼭 시간 지켜달라고요.
그래서 도착해서 봤더니 정말로 객석을 모두 막아버리고 무대 뒤쪽으로 입장을 시키네요. 아예 스크린으로 막아 버렸기 때문에 어느 쪽이 객석인지도 알 수가 없었어요. 3면으로 배치된 좌석은 소극장 크기 정도의 무대를 둘러싼 원형극장 느낌이었지요. 물론 그러기엔 천장이 아주 높고, 넓어서 관객석 마저 무대로 들어갔다는 느낌도 확실히 들었지만요.
그리고 아주 깊은 침묵과 함께 무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맥베스. 햄릿과 더불어 제게는 가장 친숙한 셰익스피어 작품입니다. 재작년에만 맥베스 연극을 두 번 봤었지요. 원작 내용과 상관없이 볼 때 마다 새로운 작품이에요. 이 맥베스는 그보다 더욱 그랬습니다. 맥베스 희곡을 읽다 보면 맥베스가 왕이 된 이후, 내란이 일어난 후에 맥베스 부인-레이디 맥베스가 몽유병을 일으킨 부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시의가 레이디 맥베스의 몽유병 증세를 지켜 보다 그녀와 왕이 저지른 죄악을 알게 되는 부분이에요. 그리고 고칠 수 없다 하고 곧이어 레이디 맥베스는 자살을 하고 무대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레이디 맥베스는 이 부분을 확대 해석한 내용이에요. 그녀가 몽유병에 시달리기 때문에 왕의 명령을 받은 전의가 찾아와 그녀의 병을 고치고자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 최면을 통해 병의 원인이 되는 과거로 들어가게 되고요. 전반적으로 오브제가 많이 쓰인 공연인데 그 오브제들은 결국 그녀의 심리 상태를 상징하게 되죠. 까만 바닥에 밀가루로 그려지는 그림, 벽에 던지는 진흙, 그 진흙으로 그려지는 덩킨 왕과 그의 심장, 죽은 왕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연상하는 부분을 위한 진흙으로 만들어진 허공에 떠있는 얼굴. 밀가루 반죽으로 만들어진 뱀, 그리고 물.
그 모든 물체들을 무대에서 직접 그리고 던지고 조각해냅니다. 특히 허공에 매달린 얼굴의 경우 무대에서 순식간에 주물주물하여 만들어 내다니 나중에 그 얼굴을 줄을 넣어 잘라내 버리죠. 그리고 뒷부분 얼굴에서는 머리를 움푹 파일 정도려 쳐내고 그 안에 들어있는 밀가루들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요. 어느 틈에 무대 구석에 차오르는 물은 나중에 레이디 맥베스가 손을 씻고, 물에 뛰어드는 장면이 나오고요.
레이디 맥베스가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며 점점 현재로 돌아오게 됩니다. 원래 원작에서 맥베스 부인은 그 몽유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끝내 자살을 하며 중간에 퇴장 하듯, 이 레이디 맥베스도 맥베스가 전쟁에 나가 싸우고 패해 죽는 장면까지 나오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은 그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극 후반이 되면 무대 뒤로 내려와있던 스크린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까맣고, 서늘하게 빈 관객석이 허공에 떠오르는 것처럼 등장해요. 아마도 이렇게 조명 없는 객석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무대에 올라가 연기하는 배우나 공연스텝이 아니고서는 힘들 거에요.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는 것임에도 그 장면이 눈으로 보였을 때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토월극장 1층 중반까지 판자 같은 걸로 다리처럼 놓여있는 길을 따라 레이디 맥베스는 온 몸에 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 갑니다. 한참을. 먼 길을. 그 다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무대 전체 보다 더 길게 뻗어있죠. 어두운 객석 중앙으로 하얀 옷을 입고 그렇게 멀리.
그 장면에 배경음으로 쓰인 구음(口音)이 있습니다. 무대는 내내 실제 연주로 타악과 구음이 나오는데 이 조화가 또 굉장히 멋져요. 만들어진 배경음이 아닌 함께 공연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의 사람의 목소리가 내는 그 음은 정말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렸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떠나며 막이 내리고. 인사를 위해 돌아 올 때 정말 정신 없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들에게, 이 무대를 보여준 모두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정말 멋졌고, 감동적이었고, 이런 무대를 볼 수 있었다는 데 기뻤어요. 이 충족감을 저에게 준 모든 이들에게 정말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이제 공연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기회가 되는 분들 꼭 한 번 가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 by | 2008/04/01 11:11 | - 공연즐기다 | 트랙백(1) | 핑백(1) | 덧글(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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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연극 레이디 맥베스
공연일시: 2008년 3월 21일(금)~ 4월 15일(화) (13일까지 공연에서 15일 연장 공연이 결정되었습니다. 월요일은 공연없음) 공연장소: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원작: 윌리엄 세익스피어 재창작, 연출: 한태숙 오브제 창작: 이영란 무대: 이태섭 조명: 이보만 타악: 박재천 작곡, 구음: 김민정 안무: 박호빈 의상: 김우성 - CAST - 레이디 맥베스: 서주희 궁중의사(전의), 맥베스: 정동환 오브제......more
... 데로 왔으니 볼까 싶은데…. 볼 예정 연극 서안화차(2008년 10월 22일(수) ~ 11월 2일(일)) : 아직 예매는 안 했지만 한태숙 연출이다. 꼭 보리라. 열흘밖에 안 하니 빨리 예매해야겠다. -> 예매했음.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 아직 예매 안했다. 당연히 류정한 캐스팅으 ... more
appleby님 / 옆구리여도 괜찮을 거 같아요. 앞을 향해 공연하는 무대가 아니라서요. 단지 너무 왼쪽, 너무 오늘쪽 안쪽으로 들오가면 벽쪽이 잘 안 보일 거 같긴 하지만요. 그리고 어차피 중앙블록도 아주 오른쪽과 아주 왼쪽은 시야가 좋지 않을 거 같더라고요.
191970님의 감상,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팀 모두와 나누려고 하는데 담아 가도 괜찮을지요?
김수희님 / 이런 놀라울 때가. 거참 세상은 좁고 웹은 더 좁다는 걸 요즘 종종 느끼곤 해요. 그리고 저야 말로 좋은 공연 봐서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런 제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달 되는 거 같아 기쁘네요. :)
그럼데 담아간다 하시는 건 설마 글을 통째로 카피해 간다는 건 아니시겠지요? 여러가지 이유로 저는 제가 쓴 것들이 다른 공간에 올라가는 걸 원치 않습니다. ^^;; 그리고 사실 그렇게 같이 보신다고 하니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이왕이면 그냥 제가 모르게 해주시는 게....
보셔서 아시다시피, 공연팀 평균 연령이 고령인 관계로ㅡ
웹문화에 낯선 어르신들께서 좋은 리뷰를 공유하기가 힘들어 그런 것입니다.
님의 글은 제가 한글에 담아서 제목 아래, 아이디와 주소를 붙여서 보여드릴 겁니다.
부끄러워 마시고, 허락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님이 모르게 가져갈 방법은 '슬쩍ㅡ' 밖에 모르겠어서요;;
그리고 그런 링크나 트랙백은 굳이 허락받지 않으셔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