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4일
[감상]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2008/08/19 20:00 LG아트센터 류정한 / 윤공주 / 김성기
1년 만에 라만차의 사나이를 다시 만났다. 2004년 초연을 못 봤기 때문에 가장 기대하고 보고 싶었던 류정한씨 캐스팅이다. 작년에 봤던 조승우씨의 경우 너무 기대하고 보고 싶어 갔던 무대였던데 반해(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아닌) 조승우라는 배우가 만족도를 채워주지 못해 그 욕구불만이 커서 더욱 보고 싶었던 공연이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었던 공연이 이 공연이 맞았다는 확신하며 돌아왔다.
첫 관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대, 의상, 동선, 연기, 대사 등의 세세한 부분에 눈 돌리지 않고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건 조금 특별한 경험이었다. 보통은 새로 듣는 노래나 내용에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두 번째 관람에 가서야 그런 디테일이 보이는 편인데 이번엔 그 반대였으니.
첫 관람과 재관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상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이게 작년 공연과 올해 공연의 차이인지 아니면 배우의 차이인지는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물론 배우의 차이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알기는 하지만.
올해 관람한 류정한씨의 돈키호테/세르반테스는 훨씬 무겁고 진실했다. 혹은 내게 그랬다. 세르반테스는 수도원에 세금을 징수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위해 잡혀왔다. 그는 법대로였다고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상주의자가 맞음을 인정함으로써 그 평등이 이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 변론으로 하는 돈키호테라는 이야기는 그가 이상주의자이지만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될 거라 믿거나 되길 원하는 게 아니라 아닐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미쳐버린 현실 속에서 자신이 믿는 이상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미쳐버린 노인,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기사가 되어버린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힘을 갖는다.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는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누구도 현실 속의 승자가 아니다. 늙은 알론조 키하라는 다시 한 번 기사의 노래를 부르지만 그대로 죽어 버리고 알돈자에게 남은 건 씁쓸할 정도로 바뀐 거 없는 현실뿐이다. 특히 알돈자의 경우 바닥에 놓여 있는 그 현실은 생각할수록 아플 뿐이다. 과연 그녀가 그렇게 꿈을 갖는 것이, 쓴맛밖에 없는 게 당연한 삶에서 단맛을 알게 되는 것이 도움될 것인가. 꿈을 가지고 이상을 향해 나아가라는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그녀의 무거운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거나 바뀌게 해주는 것이 있을 것인가. 글쎄, 오히려 모르는 체념의 삶이 더 나은 게 아니었을까.
이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의 변론을 위해 진행되지만 그로 인해 그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글자로 존재하는 희곡이 무대 위에 올려짐으로써 생명을 갖듯 세르반테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직접 연기함으로써 한 걸음 더 앞으로 내 디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론조가 거울의 기사와 싸우고 제정신을 차린 뒤 일어날 힘도 없이 침상에 누워있는 상태-현실로 돌아온-로 끝나던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는 늙은 알론조가 다시 한 번 빛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돈키호테로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 것으로 바뀐다. 결론 자체는 현실주의자였던 그답게 여전히 바뀌는 것 없이 죽음을 맞는 알론조이지만 그 방향은 체념에서 여전히 이상을 간직하는 것으로 바뀐다. 오히려 돈키호테로 돌아옴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듯 보이기까지 하지만.
돈키호테는 현실 속에서 싸우는 세르반테스가 현실을 이겨내려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르반테스의 반영이자 이상이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려면 미쳐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현실 속에서 느끼는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돈자의 마지막 대사처럼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론조가 돈키호테였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며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게 미쳐버리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면 그 자체는 죽지 않은 것이다. 이제 알돈자는 자신을 둘시네아라고 부른다.
아프지만 바뀐 것이 없는 현실이기에 더욱 그들이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위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고 부르는 그들의 노래 제목이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인 것이다. 바뀌는 것 없던, 별 수 없었어 라고 끝을 맺던 이야기가 그럼에도 나아가리라고 바뀐 것이다. 이룰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리라. 저 별에 닿기 위해서가 아닌 잡을 수 없는 별이라도 힘껏 팔을 뻗겠다고.
"세르반테스, 내생각에는 말야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는 형제야."
"신이여 도우소서. 우리는 모두 라만차의 기사들입니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종교 재판을 위해 나가는 장면. 마치 빛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듯한 그 장면으로 끝난다. 그 빛에 있는 것은 종교재판이라는 희망을 갖기 힘든 현실뿐이지만 그 현실과 싸우고자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
공연을 보고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오랜만에 열정을 담아 후기를 쓰겠다고 굳게 결심했지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서 그 열정을 다시 잊었습니다. 하지만, 여행 떠나기 전에 적어 놓아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적은 것이라 앞뒤도 내용도 엉성하네요. 정성들여 쓰고 싶다는 욕심에 끝까지 작성 못 했던 헤드윅과 더불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제대로 토해내지 못한 무대입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뮤지컬 무대를 노래와 배우 중심으로, 이야기 자체에 빠지지 못한 채 관람하는 제게 이야기로 다가오는 무대라는 것입니다. 여행 다녀와서 좀 더 정성을 기울여 수정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 내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특히 윤공주씨의 알돈자가 윤간당하는 그 장면은 너무 아파 눈을 돌려버리고 싶었던 느낌이나 너무너무 귀여웠던 이훈진 산초 등. 생각할 수록 이야기가 오히려 짧게 느껴져요. 그들의 현실과 이상을 위해 더 많은 장면과 노래가 필요한 거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새삼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이 흘러나왔던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그 장면이 떠올라요.
+
지금 시간 새벽 3시 20분. 5시간 30분 뒤면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1년 만에 라만차의 사나이를 다시 만났다. 2004년 초연을 못 봤기 때문에 가장 기대하고 보고 싶었던 류정한씨 캐스팅이다. 작년에 봤던 조승우씨의 경우 너무 기대하고 보고 싶어 갔던 무대였던데 반해(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아닌) 조승우라는 배우가 만족도를 채워주지 못해 그 욕구불만이 커서 더욱 보고 싶었던 공연이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었던 공연이 이 공연이 맞았다는 확신하며 돌아왔다.
첫 관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대, 의상, 동선, 연기, 대사 등의 세세한 부분에 눈 돌리지 않고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건 조금 특별한 경험이었다. 보통은 새로 듣는 노래나 내용에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두 번째 관람에 가서야 그런 디테일이 보이는 편인데 이번엔 그 반대였으니.
첫 관람과 재관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상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이게 작년 공연과 올해 공연의 차이인지 아니면 배우의 차이인지는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물론 배우의 차이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알기는 하지만.
올해 관람한 류정한씨의 돈키호테/세르반테스는 훨씬 무겁고 진실했다. 혹은 내게 그랬다. 세르반테스는 수도원에 세금을 징수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위해 잡혀왔다. 그는 법대로였다고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상주의자가 맞음을 인정함으로써 그 평등이 이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해 변론으로 하는 돈키호테라는 이야기는 그가 이상주의자이지만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될 거라 믿거나 되길 원하는 게 아니라 아닐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미쳐버린 현실 속에서 자신이 믿는 이상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미쳐버린 노인,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기사가 되어버린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힘을 갖는다.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는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누구도 현실 속의 승자가 아니다. 늙은 알론조 키하라는 다시 한 번 기사의 노래를 부르지만 그대로 죽어 버리고 알돈자에게 남은 건 씁쓸할 정도로 바뀐 거 없는 현실뿐이다. 특히 알돈자의 경우 바닥에 놓여 있는 그 현실은 생각할수록 아플 뿐이다. 과연 그녀가 그렇게 꿈을 갖는 것이, 쓴맛밖에 없는 게 당연한 삶에서 단맛을 알게 되는 것이 도움될 것인가. 꿈을 가지고 이상을 향해 나아가라는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그녀의 무거운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거나 바뀌게 해주는 것이 있을 것인가. 글쎄, 오히려 모르는 체념의 삶이 더 나은 게 아니었을까.
이 이야기는 세르반테스의 변론을 위해 진행되지만 그로 인해 그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글자로 존재하는 희곡이 무대 위에 올려짐으로써 생명을 갖듯 세르반테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직접 연기함으로써 한 걸음 더 앞으로 내 디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론조가 거울의 기사와 싸우고 제정신을 차린 뒤 일어날 힘도 없이 침상에 누워있는 상태-현실로 돌아온-로 끝나던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는 늙은 알론조가 다시 한 번 빛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돈키호테로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 것으로 바뀐다. 결론 자체는 현실주의자였던 그답게 여전히 바뀌는 것 없이 죽음을 맞는 알론조이지만 그 방향은 체념에서 여전히 이상을 간직하는 것으로 바뀐다. 오히려 돈키호테로 돌아옴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듯 보이기까지 하지만.
돈키호테는 현실 속에서 싸우는 세르반테스가 현실을 이겨내려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르반테스의 반영이자 이상이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려면 미쳐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현실 속에서 느끼는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돈자의 마지막 대사처럼 돈키호테는 죽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론조가 돈키호테였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며 이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게 미쳐버리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면 그 자체는 죽지 않은 것이다. 이제 알돈자는 자신을 둘시네아라고 부른다.
아프지만 바뀐 것이 없는 현실이기에 더욱 그들이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위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고 부르는 그들의 노래 제목이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인 것이다. 바뀌는 것 없던, 별 수 없었어 라고 끝을 맺던 이야기가 그럼에도 나아가리라고 바뀐 것이다. 이룰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리라. 저 별에 닿기 위해서가 아닌 잡을 수 없는 별이라도 힘껏 팔을 뻗겠다고.
"세르반테스, 내생각에는 말야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는 형제야."
"신이여 도우소서. 우리는 모두 라만차의 기사들입니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종교 재판을 위해 나가는 장면. 마치 빛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듯한 그 장면으로 끝난다. 그 빛에 있는 것은 종교재판이라는 희망을 갖기 힘든 현실뿐이지만 그 현실과 싸우고자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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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고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오랜만에 열정을 담아 후기를 쓰겠다고 굳게 결심했지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서 그 열정을 다시 잊었습니다. 하지만, 여행 떠나기 전에 적어 놓아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적은 것이라 앞뒤도 내용도 엉성하네요. 정성들여 쓰고 싶다는 욕심에 끝까지 작성 못 했던 헤드윅과 더불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제대로 토해내지 못한 무대입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뮤지컬 무대를 노래와 배우 중심으로, 이야기 자체에 빠지지 못한 채 관람하는 제게 이야기로 다가오는 무대라는 것입니다. 여행 다녀와서 좀 더 정성을 기울여 수정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 내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특히 윤공주씨의 알돈자가 윤간당하는 그 장면은 너무 아파 눈을 돌려버리고 싶었던 느낌이나 너무너무 귀여웠던 이훈진 산초 등. 생각할 수록 이야기가 오히려 짧게 느껴져요. 그들의 현실과 이상을 위해 더 많은 장면과 노래가 필요한 거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새삼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이 흘러나왔던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그 장면이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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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 새벽 3시 20분. 5시간 30분 뒤면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 by | 2008/08/24 02:58 | - 공연즐기다 | 트랙백 | 덧글(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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