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연극 도살장의 시간

 

도살장의 시간

공연일시 : 2009.10.27 ~ 2009.11.08
공연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원작 : 이승우
연출 : 한태숙
출연 : 천편 역 박지일, 여자 역 서영화, 도축검사관 역 유준원, 윤옥 역 이영숙, 경호원1, 가죽장 역 김원주, 경호원 역 권겸민

극단 물리

2009/11/01 19:00


무대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서안화차와 레이디 맥베스 때도 느꼈지만 이 연출가는 무대를 정말 입체적으로 활용한다. 바닥만이 무대가 아니라는 듯. 이번 무대는 무대를 모두 드러내서 무대 밑 공간을 지하 공간으로 사용하고 일상 무대보다 조금 높게 그 위층을 세운다. 그리고 시간을 오고 가는 장면 중 도살장 장면을 모두 지하에서 연기하는데 공간의 효과적인 사용도 놀랍지만, 그로 인한 효과는 더 놀랍다. 그 밑까지 과연 조명이 제대로 갈까, 시야 각은 어떨지 걱정하면서 들어가 앉았는데, 그 내려다 보는 느낌, 관객이 더 높은 곳에서 밑을 엿보는 거 같은 시야는, 거기에 조명이 잘 비춰지지 않는 깊숙한 구석은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위층도 마찬가지. 2층 높이가 아니지만 그래도 1층도 아니라는 듯. 평상시 우리가 바라보는 높이가 아니라는 게 굉장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장면마다 사용하는 각 공간은 정말 멋지더란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조명도 그렇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배경음악도 그렇고. 그냥 정말 멋지다.

좀 아쉬운 것은 역시 내용인가. 기본적으로 나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작가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연극하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연극론도. 내용으로 녹아 들지 못하고, 너무 노골적이라 낯뜨거운 느낌이 강해서인데... 그래서 이 연극 줄거리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원작의 도서관과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연극사 자료실과 연극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라고 할 때부터 걱정스러웠다만... 이 느낌은 마찬가지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었지만 작가의 말이 직접 들리는 듯한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쓴 게 누구인지 뻔히 아는 입장에선 너무 노골적이라고 생각되어 개인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구체적인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이 왜 고향을 떠났고, 과거를 버린 사람으로, 도살장의 도살꾼으로 살아와야 했는지에 대한 계기가 너무 놀랍지 않아서 좀 처진다. 도입부에서부터 중간의 그 무서움, 그로테스크한... 그런 장면들이 고작 그 사건으로? 그래, 작은 일은 아니지만 정말? 거기다 오래 전, 이 마을에도 연극이 많이 했었대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연극을 좋아해서 손잡고 걸어 걸어 이 작은 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왔었대요 라는 동화 도입부 같은 대사는 대체 연극이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그렇게 일상과 근접했는데 라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거기다 과거 도살장의 그와 지금 연극사 자료실을 찾은 그는 다른 사람같이 느낌이 다르다. 그는 언제 도살장을 떠나, 무엇을 했고 왜 여기를 찾아왔을까.

사실, 전체적인 줄거리보단 장면 장면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느낌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를 만들어 내는 작품이었다. 계속 떠올리는 인상적인 장면도 많았고. 특히, 도입부는 굉장히 좋았다. 여러 장면들이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주기 위해 사용되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의 내면을 아예 따로 보여주기 위해 춤을 추는 주인공의 또 다른 자아를 비롯해서. 정영두씨가 연기한 이 다른 자아는 좀 뭐라 하기 어렵다. 그런 표현이 좋았던 장면도 있었고, 특히 도입부 및 초반은 아주 좋았는데. 가끔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장면도 있어서.

그런 내용 말고 좀 뭐랄까...... 작품의 바탕에 깔린 정서가 촌스럽다. 80년대? 90년대? 우리는 지금 2009년을 살고 있는데 2009년에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게 아닌, 그 시절에 만든 8-90년대 드라마를 보면 느껴지는 촌스러움. 그런 느낌이다. 서안화차 때도 그런 느낌이 강했는데 예전 작품 다시 올려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좀 했었지만 이번 신작을 보니 그렇지만은 않은 듯싶다. 레이디 맥베스나 강철을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현대가 아닌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를 보여주는 쪽이 그런 느낌이 덜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고. 나이가 들어가는 작가의 작품을 볼 때 많이 드는 느낌인데...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는 분명 있고, 그런 정서를 중심으로 시대와 상관없는 작품도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시간은 계속 흘러 시대는 이렇게나 바뀌어 가는데. 작가는 자신의 시대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이 더 많다. 특히 과거 장면 중 도살장에서 주인공을 유혹하는 여자는 너무 많이 구태의연했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 약으로 먹겠다고 새끼를 임신한 암소를 가져와 잡아달라고 말하는 그 부분. 그때 그 암소와 뱃속에 들은 새끼를 연기하는 장면은 정말 소름 돋았다. 하지만 이 부분은 너무 구석에 안쪽이라 모든 자리에서 보이진 않았을 듯.

인상적인 장면 둘. 마지막. 여자가 누워있는 침대를 세웠을 때 미리 부은 소주로 머리 닿는 부분이 젖어, 젖은 피처럼 보이기도 한다. 덕분에 앞으로의 비극이 더 연상되기도 했고. 그때 여자의 우는 장면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참 섬뜩하고 무섭다. 더 무서운 장면이 있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결말은 좀 실망하기도 했고. 좀더 폭발적인 장면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사실 이런 여러 가지 많은 아쉬움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한태숙 연출님 작품은 놓치지 않고 찾아보게 될 듯싶다. 사실, 무대와 그 표현 보는 재미만으로도 등뒤가 오싹오싹해서.

+
사실, 난 저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도 깜짝 놀랐다. 너무 촌스러워서. 저 구성, 저 색감. 한 2-30년은 지난 영화 포스터 같다. 포스터와 내용 소개만 보면… 연출과 극단 이름 아니면 볼 생각 절대 들지 않았을 거 같다.

내가 썼지만.. 정말 왜이리 두서없냐.

by 191970 | 2009/11/03 16:18 | - 공연즐기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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