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안녕

 

 

안녕, 씨네큐브

 
씨네큐브라는 극장이 있습니다. 광화문 역에서 내려 서대문구청 쪽으로 향하다 보면 키 큰, 한 손으로 망치질을 하고 있는 큰 조형물을 만날 수 있는 바로 거기입니다. 흥국생명 건물 옆으로 지하로 바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가면 분수와 대나무가 있는 입구가 있습니다.

다른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많이 보여주는 곳이었어요. 자체 영화제나 상영회 등으로 프로그램 있는, 이미 지나거나 너무 짧게 지나가서 못 본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해주고, 다른 극장들이 개봉해주지 않는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스폰지와 더불어 양대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죠. 영화 정보가 없어도 씨네큐브에서 선정한 영화라는 것으로 기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저에게도 특별한 기억이 참 많습니다. 헤드윅을 그리고 록키호러픽쳐쇼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던 2006 컬트 영화제, 그 뒤 뮤지컬 기념 헤드윅 영화 재상영. 천하장사 마돈나, 가족의 탄생, 삼거리 극장 등의 재 상영, 브로크백마운틴 연장상영 브로크백 마운틴은 영화를 반복해 보면서, 릴에서 필름을 잘라가는 추억을 주기도 했어요. 그 외에도 그 곳에서 본 영화가 꽤 많습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많은 수가 씨네큐브와 스폰지에서 본 영화들이에요. 매점이 없는 극장,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켜주지 않는 극장, 식음료 반입금지 극장 그리고 혼자 보는 관객이 어색하지 않은 극장이었죠.

그 극장이 이제 없어집니다. 흥국생명과 파트너로 영화사 백두대간이 운영하던 씨네큐브가 제가 가는 극장이었습니다. 장소도 중요하지만, 단지 장소가 아니었죠 그곳은. 어떤 영화가 올라오는지… 기획과 그 곳을 운영하는 마음가짐, 규칙, 예의 모든 게 있었죠. 그 백두대간이 8월 31일자로 더 이상 씨네큐브를 운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씨네큐브'란 상표명은 이제 흥국생명이 소유하고 있다고 하니 그 이름으로 그 장소는 유지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제가 사랑한 씨네큐브는 이제 안녕이겠죠.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이대안에 위치한 예술극장 모모는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저한텐 행동반경으로 너무 멀어서요. 하지만, 이젠 그쪽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네요. 슬픈, 아쉬운 소식이에요. 자본이 사람의 취향마저 강요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역시 받아들이기는 너무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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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 김에 예전에 썼던 글 중에 씨네큐브와 관련된 글들에 씨네큐브 태그를 달았습니다. 생각보다 포스팅이 얼마 안되네요.

by 191970 | 2009/08/12 13:36 | - 영화보다 | 트랙백(1) | 덧글(3) 

여기서 놓자.

 
원래 그렇게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우연한 만남이 오랜 인연으로 이어지는 좋은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유지하기 힘든 취미생활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친해진 것도 있고, 그러한 기간이 길기도 했고. 그덕에 오랜시간이 즐거웠고.

같이 공유하던 취미를 바쁜 일과에 미루던 게 하루 이틀. 어느새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취미도 사람과도. 그래도 종종 만나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시간이 많다고 자주 보진 않겠지만 그렇게 가끔 만나면 즐겁고, 오래 안 만나면 보고 싶다 생각했다. 물론, 오랫동안 못봤으니 봐야겠다는 의무감도 있었겠고... 하지만 상대가 너무 바빠 못 만난지 반년이 되어간다. 그 전에도 바빠서 힘들게 가끔 몇 번 만난 거 밖에 없는데.

그런데, 우연히 그 사람의 블로그를 알게 됐다. 원래 내가 알던 곳과 다른 곳. 비밀이었을리는 없고, 찾아가기도 쉽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공간이 있었다는 것, 그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바빠서 못 만나는 그 사이에 스트레스 쌓일 때, 힘들 때 만나던 사람이 있고 바빠도 그들과는 계속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 물론, 그쪽도, 나도 서로에게 힘들때 연락하고 힘이되는 그런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긴 시간 내가 연락하지 않고서는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을, 그동안 바쁜 기간 내내 가끔 생각나면 연락하고, 바쁜 거 지나가면 한 번 보자란 말만 주고 받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냥 그만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무슨 연애를 하는 사이도 아니고, 내가 짝사랑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매번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느낌이 드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쪽이 나를 싫어하거나, 만나기 싫어서 따돌리거나 이런 건 아닐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이 필요할 때 내가 생각나거나 보고 싶거나 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의 만남이 내 쪽의 희망으로만 이루어지는 거라면 여기서 놓는 게 맞는 거겠지. 사람과의 끈을 놓는 건 언제나 너무 힘들다. 나는 분명 메신저에 눈에 띄면 또 말걸지 않고는 못 견디겠지. 그러니 이제 손을 놓으려면, 대화상대에서도 삭제를 해야겠다.

나는 인간관계의 자연소멸을 믿는다. 마음이 떠나면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리고 마음이 떠난다는 건 어떠한 계기도 없을 수도 있다.

by 191970 | 2009/07/03 18:55 | -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 트랙백 | 덧글(2) 

안녕.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한 십 년? 십일 년?
대학에서 만나서 1,2학년 같이 술 먹고 돌아다니고, 같이 동아리 활동하고 그 안에서 커플들이 생겼다 깨지고, 여러 번의 여행, 더 친한 사람, 덜 친한 사람도 있고, 남자들이 군대 입대하고, 휴가 나오고, 제대하고, 여자들이 한명 한명 취업하고, 첫 월급 턱을 내고, 장학금 턱을 내고 모두가 사회에 나와서도 일 년에 대충 8-10번은 만나 술 마시던 사이.

사회에 나오며 서로들 바빠지고 결혼한 사람들도 생기면서 무언가 만날 핑계가 확실히 주어지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결혼알림모임, 생일모임 등을 중요시했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정보다 의무감이 짙어지고, 다른 사람이 나오는 게 의무감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그런 사이가 됐다.
슬슬 그런 의심이 위험수위까지 올랐는데, 그 이유는 솔직히 내가 애정과 의무감의 선에서 의무감이 아슬아슬하게 절반 수위에 다다르고 있어서고, 모임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번히 빠지는 멤버가 빠지면서 미안함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 이 정기 모임은 파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느 모임에나 나름 주기가 있듯, 이 모임도 이제 끝나가는 때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있는 애정과 미련이 쉬이 손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가을과 이번 주, 새로 연락을 맡은 친구에게서 "다음주 X요일" 하는 식의 통보 문자를 받았다. 선약이 있는 날. 못 간다고 대답을 했다.

그동안 가능하면 참석하려 노력했고, 그래서 정말로 빠진 적이 거의 없었던 모임이다. 그만큼의 시간과 애정들 들여왔지. 그렇게 쌓여있는 노력과 애정이 더 큰 기대를 만들어 낸다. 잘 모르는 사람,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그 사람은 그런 타입인가라고 생각하고 말 텐데, 그러지 못하고, 왜 다시 물어주지 않는 걸까? 왜 통보하기 전에 언제 되냐고 묻지도 않는 걸까? 못 간다고 하면 그럼 언제 되는데? 라고 한 번 더 묻는 게 그리 힘드나? "그날 안 되는데 왜 하필 그날"이라고 답 보냈더니 다시 연락이 없다.

어차피 여러 사람 모이는 것이니 주인공이 가능하고 가능한한 못 오는 사람 적은 날로 정하는 게 맞는데, 그건 아는데, 그럼 다른 날은 누가 안된다거나 안 되는 사람이 많아서 그날밖에 안 되겠다 정도 얘기 못해주나?

메신저를 하지 않으니 이런 마음을 전하기 더 어렵다. 전화를 하자니 너무 진지하게 화내는 거 같아지고, 문자로 하자니 하고 싶은 말이나 전하고 싶은 마음의 반의 반도 안 담긴다. 차라리 메신저로 장난식으로 통보냐? 라고 묻고, 대답 듣고, 그렇게 들리잖아 투정하고 그게 편할 텐데.

중간에 낀 다른 친구가 내 섭섭한 마음을 전했는데 그게 제대로 전달이 안됐나 보다.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지만 하고 있는 말을 듣자니 난 왜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고, 그 친구는 내게 왜 전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 같다. 처음엔 그래도 반갑게 전화받고 웃으며 대화했는데 마지막엔 화를 내며 말하는 도중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연락이나 통보 나한테는 보내지 않아도 돼라고 문자까지 보냈다.

만 십일 년, 강산도 변하는 시간, 예전같지 않은 건 당연하겠지. 주기가 다해서 이제 자연소멸될 시기가 된 거겠지. 머리가 쉽게 납득한다. 이제 머리로 납득한 것을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가끔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주위 사람을 이런 식으로 잘라내 버리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무서워지기도 한다. 내가 더 까다로워지는 것일까? 아님 주변 관계가 그런 식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아니면 있던 관계는 그렇게 정리되는데, 새로운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인 걸까?

by 191970 | 2007/01/18 11:43 | -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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